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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기묘한 인척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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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대의 동서분당 이후 사림 세력은 분화를 거듭하고 붕당을 형성해 나갑니다.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쪼개진 이후에 

서인과 남인, 북인으로 쪼개지고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쪼개집니다.


이후 인조 반정을 거치면서 북인의 존재는 자취를 감추고 

남인은 탁남과 청남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쪼개집니다.


조선 후기의 정치를 보다보면 분당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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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말고요.


당이 쪼개지는 분당을 얘기하는 겁니다.

분당을 거듭하던 이 시기 주목할만한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권이진(1668-1734)이라는 사람입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대단한 사람이지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아닙니다.

1694년 과거에 급제해 승지, 판서,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사람인데 숙종과 경종, 영조 대의 흔한 신하 중 한 명일겁니다.

다소 특이할만한 점은 당파에 초연했다고 합니다.

크게 당파에 소속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붕당의 시대에 당파에 초연했던 사람이라...

찾아보기 참 힘든 사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당파에 초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인척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흔히 중립을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중립을 지킨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의 힘은 친인척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사람이 살던 시대에 제일 잘 나가던 붕당이라고 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바로 노론입니다. 혹시 한국사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노론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우암 송시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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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 바로 권이진의 외조부, 즉 외할아버지입니다. 또한 스승이기도 했고요.

노론의 영수이자 당대 최고의 산림이었던 송시열이 외할아버지다? 게다가 제자다?

두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조선 후기에 여인들을 하대했다고 하지만 관직에 진출한 집안의 족보를 보면 사위와 외손자까지 기재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왜냐고요? 단순히 족보 뿐만이 아니라 세력도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거든요.


외할아버지가 송시열인데 노론에서 쉽게 건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못 건드리죠?


??? : 꼬우면 뭐 어쩔건데 우리 외할아버지가 송시열인데 뭐?


노론에서 공격을 못하면 다른 붕당에서 공격을 할 수도 있겠죠.

대표적으로 노론과 척을 졌던 붕당하면은 소론이 떠오를 겁니다.

소론에도 권이진과 인척 관계를 맺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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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은 권이진의 고모부이자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송시열한테 배운 이후 고모부인 윤증에게서도 배움을 청합니다.


??? : 우리 고모부이자 스승님이 윤증인데? 뭐 어쩔건데?


소론에서도 공격하기가 매우 애매했을겁니다.

그러면 남은 붕당이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남인입니다.

남인은 아무리 몰락했다고 하지만 소수나마 조정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갑술환국(인현왕후 복위)-신사의 옥(장희빈 사약) 이전에 남인을 대표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백호 윤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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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는 한국사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사문난적으로 유명한 그 사람 맞습니다.

예송논쟁에도 한가락하기도 했고요.

당시 청남의 수령이기도 했죠.


이런 인물과도 인척관계가 된다?

어떻게 연결되냐면 정확히는 고모부의 아빠가 윤휴였습니다.

큰 고모부가 윤증, 둘째 고모부가 윤휴의 아들 윤의제였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윤증과 윤의제는 동서 사이가 되기도 하네요?


각 세력의 영수들과 친인척과 사승관계로 이어져있었던거죠.


이렇게 혼인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권이진의 할아버지, 권시에게서 비롯됩니다.


권시는 원래 서인의 산림이었는데 과거를 보지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효종의 사부 자리도 거절했습니다.

사돈이었던 송시열의 간곡한 설득에 서울로 올라와 관직을 지내게 됐던거죠.


당시에는 예송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송논쟁은 서인과 남인의 구도로 대결이 진행됐는데 서인이었던 권시가 남인의 손을 들어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회에서 표결을 하는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의 힘 편을 든 꼴인거죠.


그래서 그 이후로 권시는 같은 서인으로 인해 파직되고 낙향합니다.

남인의 입장에서는 용기를 무릅쓰고 자신들의 편을 들어줬으니 좋게 보였겠죠.


그래서 이후 이 집안은 소론과 남인의 중간 스탠스를 취하게 됩니다.


한국사를 공부했다면 한번 쯤 들어봤을 인물들인 송시열과 윤증, 윤휴와 혈연과 혼맥, 사승관계로 얽힌 사람이 있었네요.


붕당들은 각자의 붕당과 혼맥을 쌓지 타 붕당과의 혼맥을 많이 쌓지는 않았습니다.

노론과 소론의 경우에는 권이진의 시점에서 분화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능한 경우였지만

노론과 소론, 남인까지 모두 아우르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보통 선조 대는 올라가야 나옵니다.


아무리 조선 후기 붕당들이 서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기가 드물어서 이 글을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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