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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변 하니까 생각난 명종업적

댓글 : 1 조회 : 129

https://www.youtube.com/watch?v=Oxck7sJpJRs



1. 수조권 혁파-녹봉제 전환


명종실록 20권, 명종 11년 6월 9일 병신 1번째기사 1556년 명 가정(嘉靖) 35년

헌부에서 사십자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나라의 비용에 보태길 건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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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의 직전은 진작 없어졌는데 거승의 위세는 그대로 있으며, 육경으로 있는 사람들은 황공히 죄를 기다리는데 승려들은 기뻐 날뛰며 서로 축하하니 매우 성덕에 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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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사고본】13책 20권 55장 A면【국편영인본】20책 344면

【분류】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재정(財政)



2. 사대동-관행화된 공물변통


명종실록 28권, 명종 17년 7월 28일 경술 1번째기사 1562년 명 가정(嘉靖) 41년

잔폐한 해미현의 요역을 면제하고 공부를 다른 관아로 이정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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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아뢰기를,

"청홍도 관찰사 민기(閔箕)가 해미현(海美縣)이 가장 잔폐하였기 때문에 견감(蠲減)할 일을 【유민(流民)의 전답(田畓)에 요역을 면제할 것, 미수 공물을 양감하거나 이정하거나 쌀로 대신 바치게 할 것, 미수 소금을 풍년이 든 뒤에 수납할 것, 미납된 선상대포(選上代布)를 견감할 것, 왕년의 공채(公債)를 양감할 것 등 95조목이었다.】 조목별로 열거하여 계문하였습니다. 해미현의 잔폐가 더욱 심하니 진계(陳啓)하는 것이 과연 마땅합니다. 풍년을 기다려 미수염(未收鹽)을 거두고 공물(貢物)을 쌀로 대신하게 하는 것은 본조(本曹)의 공사(公事)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묵은 토지에 대하여 요역(徭役)을 면제하고, 공물을 이정(移定)하는 것과 왕년의 공채와 선상대포와 미납공물을 견감하는 것은 모두 특은(特恩)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품계하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진지(陳地)의 요역을 면제하고, 공부(貢賦)를 다른 관아로 이정하며, 미납공물과 선상대포는 반감하고, 왕년의 공채는 3분의 2를 감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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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사고본】17책 28권 30장 A면【국편영인본】20책 625면

【분류】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금융-식리(殖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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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말기에 처음 시행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대동은 몇몇 군현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그 군현에 부과된 모든 京納物(중앙정부와 왕실에 바치는 공물과 진상물들)을 군현 내의 모든 田土에서 균등하게 징수한 쌀을 가지고 시장에서 구입하여 납부했던 데서 대동법의 선구를 이루는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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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1. 대동법의 시행 > 1) 공납제의 변통과 대동법의 실시



3. 경국대전주해-조선전기 법체계의 마침표


(가정34년=명종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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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 註 011靖三十四年正月日 註 012 崇政大夫 行兵曹判書 兼知經筵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 成均館事 臣 鄭士龍 謹序。

註 011 “청주본”에는 행을 바꾸지 않았다.

註 012 ‘청주본’에는 “二十日”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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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國大典註解 經國大典註解 前集 經國大典註解 前集 卷首 經國大典註解 前集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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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교집록≫

≪경국대전≫이 시행된 후 성종 24년에≪대전속록≫을, 중종 38년에≪대전후속록≫을 간행하였고, 명종 9년(1554)에는≪經國大典註解≫가 이루어짐에 따라 명확한 통치의 기본법제가 완비되었으며, 법조문의 해석·적용상의 疑義도 밝히게 되어 법의 충족성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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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5.≪경국대전≫의 편찬과 계승 > 6) 법전편찬의 계승과 법사상의 변화 > (1) 속록 등 법령집의 편찬



4. 판옥선-기적의 전투함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3월 13일 갑진 3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대신과 비변사가 진·포의 판옥선과 경강의 판옥선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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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과 비변사가 함께 의논드리기를,

"각처 진·포(鎭浦)의 판옥선(板屋船)은, 처음 설치할 때 그 수효가 많았는데 그 뒤에 점차 줄여 지금은 맹선(艋船)을 약제(略除)하고 판옥선으로 《대전(大典)》에 기재된 맹선의 수효를 채우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적왜(賊倭)가 다 평선(平船)을 타고 왔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도 평선을 사용하여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왜가 다 판옥선을 이용하고 있으니 부득이 판옥선을 사용해야 서로 맞설 수 있으므로 더할 수도 줄일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다만 《대전》에 기재되지 않은 각처의 판옥선은 민력이 많이 소요되고 폐단 또한 적지 않아서 그 중에 신·구의 것을 분별하고 다시 수효를 줄였는데, 지금 줄인 각처 선척의 수효를 서계하겠습니다.

또한 경강(京江)의 판옥선을 여러 차례 줄여서 지금 15척이 되는데, 수리하고 개조하는 즈음에 그 폐단이 몹시 많으므로 의논하는 이들 중에, 개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 말도 자못 이치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조(前朝)의 일을 미루어 본다면, 적변을 예기할 수 없고 또 예비 기구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이상, 경솔히 철수시킬 수 없습니다. 경연관이 아뢴 대로 현존한 15척만 보존해 두고 나머지는 더 설비하지 마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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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사고본】20책 3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21책 73면

【분류】군사-군기(軍器) / 외교-왜(倭) / 교통-수운(水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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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옥선

板屋船은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이 일어난 바로 그 해에 새로 개발된 아주 혁신적인 군선이다.0660) 종래의 군선은 上粧이 별로 없는 平船이었는데 판옥선은 여느 선체 위 전면에 걸쳐 거대한 상장을 꾸며 놓은 배이다. 이 점에 대하여≪明宗實錄≫에는 “옛날의 왜적은 모두 平船을 타고 왔으므로 우리나라도 平船을 가지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데 지금 왜적은 모두 屋船을 타고 오므로 부득이 板屋船을 쓰지 않을 수 없다”0661)라고 서술하고 있다.

0660) 金在瑾, 앞의 책(1977), 62쪽.

0661) ≪明宗實錄≫권 32, 명종 21년 3월 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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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4. 조선업 > 5) 새로운 선종의 개발




그밖에 정치도 최대한 비폭력적으로 하려던 왕이었고 아무튼 예전에 쓴 글 날아가서 정리해봄


애비보다 명군인데 그나물에 그밥, 심지어는 애비보다 무능한 놈으로 인식되는 것 안타깝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1
GODz 11.24 05:22  
음 존재감없고 당대에도 인정받지 못하던 왕이엿던거같은데